어릴 적의 나는 소풍날이 참 싫었다. 그 이유는 내가 싸가는 소풍도시락이 여느 아이들과는 달라서였다.
나에게 소풍김밥이란 엄마의 사랑이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엄마가 싸준 김밥이나 유부초밥에 사이다 하나 넣어서 오는 게 일반적이었지만 나의 소풍도시락은 할머니가 싸 준 진미채와 소시지볶음, 흰밥에 물이었다. 소풍날이라 특별하게 싸줄 법도 한데 할머니는 항상 똑같은 메뉴로 도시락을 싸주셨다. 그 누구도 나의 도시락을 두고 수군대는 사람 없었고 오히려 할머니표 진미채반찬은 언제나 인기가 좋았다. 소풍날도 변함없는 이 도시락 반찬에서 나는 엄마 없는 아이인 게 티가 날까 봐 노심초사 애를 끓었다. 암으로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난 엄마를 나는 원망하기도 했다.
이 얼마나 자격지심인가. 소풍 김밥이 아니라고 엄마 없는 아이라고 생각할 거라는 두려움. 엄마가 계심에도 소풍도시락 자체도 안 싸 오고 빵과 우유만 가지고 온 아이가 있었음에도 나는 빵과 우유를 가지고 온 그 아이조차 부러웠다. 무엇을 가져왔든 그게 중요한 건 아니었던 거다. 그냥 어린 나에게는 엄마의 부재자체가 너무도 힘든 거였다.
착한 손녀였던 나는 할머니에게 단 한 번도 도시락에 불만불평을 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소풍날인걸 알고 계시면서도 단 한 번도 김밥을 싸주시지 않는 이유가 궁금해서 물어본 적이 있었다.
“김밥 쌀 줄을 몰라”
7남매를 키워오시면서 김밥 한번 싸본 적이 없으셨다는 말씀에 <엄마=김밥>이라고 생각한 나의 고정관념이 왕창 깨진 순간이었다. 그리고 소풍날에 내 도시락에 김밥이 채워질 날은 없겠구나 하는 실망감도 함께였다.
초등5학년 소풍날, 문방구에 들러 준비물을 사고 나오는데 근처 반찬가게를 지나가는 중에 김밥들이 쫙 포장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한 번도 김밥이 진열된 걸 본 적이 없었는데 때마침 소풍날 김밥을 팔고 있다니! 가격이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한 줄에 1500원도 안되었던 걸로 기억이 난다. 두줄을 사려는데 돈이 몇백 원 부족하니 사장님이 있는 만큼만 내라면서 검정봉지에 넣어주시며 소풍 잘 다녀오라고 하셨다.
나는 소풍도시락통 안에 흰밥을 버리고 사온 김밥들을 채워 넣었다. 다 들어가지 못한 김밥들은 그 자리에서 먹었는데 너무 맛있고 고소해서 내 평생의 김밥맛의 기준이 되었다. 시금치가 들어가 있고 김밥의 두께도 얇아서 입이 작았던 나에게 딱이었다. 불혹이 넘은 지금의 나는 김밥에는 시금치를 꼭 넣고 두께도 얇게 썬다. 집에서, 엄마가 만든 김밥에 한이 맺혔는지 나는 내 가족을 꾸리게 되면서 자주, 아주 자주 김밥을 말았다. 손이 많이 간다는 김밥을 이젠 그냥 뚝딱 만들어버리는 김밥장인이 되어버렸다.

내 소풍 도시락에 김밥이 있다는 생각만으로 어찌나 기분이 룰루랄라였는지 학교에서 대절한 고속버스를 타면 멀미로 힘들어했는데 멀미조차도 견딜만한 것이 될 정도였다.
오매불망 기다린 소풍의 점심시간. 삼삼오오 모여서 도시락을 열었다. 할머니의 진미채와 소시지볶음이 볼품없고 부끄럽다고 생각했던 마음이 나에게도 김밥이 있다는 사실 하나로 ’ 나에겐 김밥뿐이 아니라 진미채와 소시지볶음까지 있어 ‘ 로 바뀌어 있었다.
중학교1학년까지 반찬가게에서 산 김밥으로 바꿔치기를 해오다가 그 해에 반찬가게는 망하여 사라지고 중2부터는 더 이상 소풍 갈 때 도시락을 싸가지 않게 되었다. 소풍 가서 쓰라고 받은 용돈들로 다른 아이들과 매점에서 컵라면 사서 김밥 싸 온 친구들과 나눠먹었다.(여전히 엄마가 싸준 김밥들이 부러웠지만 초등 때만큼은 아니었다.)
세월이 흘러 아이를 낳고 유치원생이 되어 첫 소풍을 간다고 한 날, 나는 새벽같이 일어나 시금치를 뺀 김밥과 유부초밥 몇 개를 이쁘게 한 층에 놓고 다른 한 층에는 간식들로 채워 보냈다.
아이는 돌아와서는 나에게 다음부터는 햄볶음밥이 좋겠다고 하신다.
“소풍은 김밥이지!!! 가서 먹는 김밥이 얼마나 맛있는데!!!”
“난 그냥 볶음밥이 더 좋아 엄마”
그래 나에게는 특별했던 김밥이 너에게는 아닐 테니.
너는 나하고는 다르니까.
오랜만에 중학교 동창 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는 백옥같이 흰 피부에 차가운 느낌이 드는 요즘말로 냉미녀과인 친구다. 학교 다닐 때 점심 도시락도 반찬은 맛있는 것만 싸 오는 데다 밥은 항상 질퍽한 밥이었는데 밥이 젓가락에 덩어리처럼 붙어서 입에 넣고 있는 걸 보면 떡을 먹는 듯이 보여 그것조차 맛있게 보여서 그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너희 엄마가 맛있는 반찬만 싸주고 너 그 떡같이 먹는 밥도 나는 부러웠잖아.”
“야야. 그 도시락들 다 내가 싼 거야~”
친구는 초등 고학년부터 점심 도시락을 쭉 자기가 싸왔다고 했다. 엄마가 일하느라 힘들고 바빠서 그냥 어느 순간부터 자기가 하게 됐다고. 밥도 항상 물양도 제대로 못 맞추고 자기는 아직도 떡밥처럼 될 때가 있다고.
맛있는 반찬만 싸 오지 않았냐는 나의 물음에 친구는 의아해했다. 전날 먹고 남은 반찬들이라 흉하게 보이지 않을라고 애썼다고. 오히려 너희 할머니가 해준 진미채랑 당일날 하신 소시지볶음이랑 계란요리들이 너무 부러웠다고. 친구들이 너 반찬만 먹어서 짜증 났었잖아. 도시락 때문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급식으로 바뀌어서 너무 행복했다며 나를 놀라게 했다.
엄마가 되어보니, 자식을 일찍 보낸 할머니의 마음과 남겨진 핏덩이 같은 손녀를 보며 얼마나 거대한 슬픔이 가슴속에 사무쳤을지 상상이 가질 않는다.
도시락으로 시골반찬만 해 보내는 게 손녀가 창피스러워할까 봐 소시지든 돈가스든 젊은 엄마들이 싸줄 것 같은 걸 꼭 함께 넣어주셨다는 말은 할머니 돌아가시기
1년 전에 알게 되었다.
다들 각자의 사연들이 있다. 어디 도시락뿐이겠는가.
각자가 가지고 있는 결핍을 평생 안고 메꾸면서 성장해 나가고 깨달아 가는 게 인생이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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